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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넌 가끔가다 내 생각을 하지 난 가끔가다 딴 생각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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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6-09-07 12:14
조회1,92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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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지루한 행복
회상
계산할 때
언제나 뒤에서 기다려주던 아이
돈 없을 때 내 표정을 읽고
전표 먼저 잡는 사람이 내는 거라며
잽싸게 전표 잡던 아이
내 친구와 같이 만나기로 했을 때
내가 늦으면 친구가 주문하래도
올 때까지 기다려주던 아이
연시 좋아한다고 봄에 한 번 말한 것 같은데
가을에 바나나까지 사들고 와 먹여주던 아이
예쁜 귀걸이가 눈에 띄어 억지로 사주면
너무나 고마워하고 너무나 잘 어울리던 아이
그 사람 많은 토요일 오후
명동 골목골목을 몇 시간이고 걸어다녀도
짜증은 커녕 시간이 너무 빠르단 생각을 들게 해 주던 아이 숨막히게 더운 여름날
내가 번 돈으로 성년의 생일을 차려주고 싶어
행복한 마음으로 막일하게 만들던 아이
부슬부슬 여름비가 내리던 날
노동판에 찾아와 눈물 글썽이며 다친 데 없지 묻고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안만나겠다 하던 아이
날 한 번도 화나게 한 적이 없으면서
가끔 미안하다 하던 아이
내가 감기로 고생하면 자기 폐렴 걸린 사람처럼 더 아파해 알아서 병원 가게 하던 아이
술 취해 전화 거는 걸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술 취해 전화 걸어 헛소리 한 것 같은데
아침에 찾아와 해장국 사 주며
실수한 거 없고 하고
굉장히 미안한 표정으로 이젠 안 그럴거지 하던 아이
반찬은 잘 안 먹는 내 버릇을 알고 수저에 반찬 올려주는
그런데도 닭살은커녕 한 그릇 더 먹게 하던 아이
마른안주 시키면 먹기 좋게 찢어 주던 아이
평소에는 김미숙 같은 분위기로
나이트나 가라오케 가면 김완선보다 날리던 아이
강아지 알레르기가 있으면서
우리 갑순이를 질투날 정도로
사랑스럽게 안아주고
한참 있다 얼굴에 뽀록뽀록 뭐가 나와도
더 예쁘게 보이던 아이
그 큰 키로 행진하는 군인처럼
왼팔을 휘적휘적 흔들며 걸어도
귀엽게만 보이던 아이
핏자나 하이라이스 체리펀치를 좋아하면서도
감자전을 잘 부치고 강냉이를 즐겨먹던 아이
부모님이 여름휴가 떠나셨다고
날 집에 초대하고 싶다던 철없던 아이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하던 순간에
망설여지지도 창피하지도 않게 하던 아이
착한 눈으로 세상을 볼 줄 알던 아이
우는 것보다 웃는 것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려준 아이 그때
그때가 무척이나 그리워지게 하는 아이
....
지루한 행복
초콜릿보다 달콤하고
과일보다 상큼하며
담배보다 끊기 힘들다는
사고는 싶은데
파는 곳을 알 수 없는
아! 사랑이여
그저께 낮 2시 27분
사랑하는 시가 있었으면
사랑하는 노래가 있었으면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무식하고
못나고
많이 먹는 여자라도
내가 아니면 아무 일 못하고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굶고 사는 여자
그런 여자가 있으면
물심양면으로 사랑해 줄텐데
내일도 오늘처럼 따분할 것 같으면
잠 속에서 연애나 해야겠다
못생긴 강아지가 찡얼대고
담배는 꽁초도 없고
한숨만 나온다
사랑하는 라이타가 있으면
사랑하는 시가 있으면
사랑하는 여자가 있으면
도대체
얼마나 좋을까
긴급 통화
문득 누군가에게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어
저기 앞 공중전화로 발길을 돌린다
수화기를 들고 긴급통화를 누른 뒤
눈앞에 뵈는 번호를 누르지만
네 번 누른 뒤 뚜뚜뚜
조금 있다 딸깍
어디쯤 있는 것일까
언제쯤 나타나려고
그림자조차 보여주질 않나
지금 이 순강 통화돼
웃으며, 응석부리며, 장난치고 싶은데
어디 있길래 나타나질 않나
긴급통화를 해야 하는데
사랑해야 한다는
사랑받고 싶다는
사랑주고 싶다는
아주 긴급한 내용을
전해야 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짜증을 내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을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을 하고 싶어
하루에도 몇 번씩
너를 보고 싶어
넌 누구니?
드디어 헛소리를....
외롭다
너무나 외롭다
심심한 것보다 외로운 것이 더 지겨운 거구나
되게 외로워서
거울을 봤는데
거울 속에 나는 더 외로워 보인다
거울은 또 내가 봐주기까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러구보니까
내 방 침대도, 책상도, 오디오도, 장농도
지금 이 볼펜도
내가 만져주기까지 엄청 괴로웠겠네
쯧쯧!
나보다 더 불쌍한 놈들같으니라고......
사랑 만나기
형두라는 놈이 있어요
그 놈 생전 그런 일 없었는데
사람 한 번 만나더니
반 정신이 나갔어요
그 애 웃을 때 한 쪽 보조개가 얼마나 예쁜지 알아
말끝마다 톡톡 쏘는 게 왜 이리 사랑스럽게 들리니
어제 전화에 대고 노래 불러줬다
유치한 것 같으면서 보기는 좋더라구요
사랑의 감정이라는 게
정말 이상한 것 같지요
무뚝하고 재미없던 놈이었는데......
사랑한번 만나면
나도 이럴까요?
#원태연 #시집 #넌가끔가다